4천700만 원 가치의 한 표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인생의 반을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에서 발 딛고 생활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나에게 부여된 투표권은 항상 행사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대학교에 다닐 때라 내가 살던 기숙사에서 한 시간 거리의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를 하기도 했고, 제일 최근의 2018년 지방선거는 한국에서 엄마, 아빠랑 손을 잡고 같이 투표소에 가기도 했다.
미루고 미루다 재외국민투표 마지막 신청 일자인 2020년 2월 15일에 접수했다. 일 할 때는 뭐든 미루지 않으면서, 이런 거는 항상 마지막에 닥쳐서 한다.
2020년 3월 25일, Lock Down 마지막 날짜가 2020년 3월 31일이 아닌 2020년 4월 14일로 연장되었다. 2020년 4월 6일까지 사전투표를 완료해야 하는데, 과연 투표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2차 Lock Down이 시작되면서, 이동 통제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고, 사실 투표는 물 건너간 것 같았다.
재외국민투표가 다른 국가에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기도 했지만, 주말레이시아대한민국대사관의 공식발표가 없어 그냥 기다렸다. 2020년 3월 30일 새벽 1시 30분경, 정당과 후보자 정보자료가 메일로 도착했다. 어머, 나 투표할 수 있는 건가?
투표에 관한 자료를 받은 지 12시간을 조금 넘은 시각, 2020년 3월 30일 오후 3시 47분, 결국 말레이시아에서의 재외국민투표도 취소되었다. 메일 하단에는 2020년 4월 15일 전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만일 Lock Down이 아니었다면, 나는 2020년 4월 4일 토요일, 투표소까지 대략 1시간 30분의 여정을 떠나야 했다. 주말레이시아대한민국대사관까지는 집에서 LRT를 타고 버스로 갈아탄 뒤,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 구글 맵에 경로 탐색을 하니 1시간 3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암팡 옛날 집 가는 길에 한국대사관이 있어, 예전에 한 번 재봤는데 분명 1시간이 넘었다. 구글 맵은 믿을만하지 못해서 참고만 한다. 버스를 자주 타지 않지만, 시간에 맞춰 재깍재깍 오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아마 투표소까지 실제로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투표하고 난 뒤, 암팡의 향수를 느끼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나의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에 그쳤다. 2020년 4월 4일 당일, 역시 집에 갇혀있었다. 장을 보러 Jaya Grocery에 가고, 택배를 받기 위해 한 5분 정도 바깥의 공기를 마셨다.
말레이시아의 법이 우선시 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투표를 무리하게 진행하여 사람들이 투표하러 가다, 경찰에 잡히면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참정권도 소중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고려한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총선 한 표의 가치가 4천700만 원이라고 한다. 세상에나, 내 한 표가 이렇게나 비싸다니. 이전에도 후보들의 공약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파악하여 투표하진 않았다. 타의로 투표권이 박탈된 건 처음이라, 속상하긴 하다. 근데,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는.
뉴스 : https://www.yna.co.kr/view/AKR20200310076500004
(기자님 성함이... 뉴스를 보며 반가운 적은 처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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