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래빗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생충>의 수상으로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해서 기생충은 한국에서 개봉하자마자 보았고, 나는 <기생충>과 경쟁을 했던 작품들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제목도 귀여운 <조조 래빗>. 후기를 훑어보니 나쁘지 않아 보여, 집에서 <조조 래빗>을 보았다. 무거운 주제인 나치즘과 제2차 세계 대전을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준 참신한 이 영화는 유쾌했다. 나치즘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풍자한 <블랙코미디 전쟁 영화>라 간략히 말할 수 있다. 독일인 설정이지만 영어를 쓰는 영화가 나에게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재연 느낌을 주기도 했다.
영화는 <조조>로부터 시작하고 <조조>로 끝났다. 토끼 이빨 덕에 <조조 래빗>이라고 불리는 줄 알았는데 겁쟁이인 <조조>의 성격 탓에 <겁쟁이 토끼>라 불렸다. 아이들에게 총을 건네주며 전투를 준비하고, 여자는 아기를 생산하는 것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방법이라 말하는, 단체로 머리가 헤까닥한 사람들이 섬뜩했다. 그 사람들도 세뇌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런 사고를 했던 현실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조조> 덕분에 영화가 유머러스하면서도 경쾌히 진행되었다.
<조조>의 엄마인 <로지>는 전쟁통에서도 아들에게 사랑의 위대함을 가르쳐주는 낭만으로 가득 찬 엄마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눈물>을 담당하기도 했다. <신발 끈>... 유대인 <엘사>가 나오는 씬은 긴장감이 넘치고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다. <로지>의 도움으로 <조조>의 집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게 되는데, <조조>의 유대인의 편견을 깨부수어 주기도 하고 <조조>와 간질간질한 관계를 이어가며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로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엘사>와 <조조>가 문 앞에서 율동보다도 못한 춤을 추며 끝나는 이 영화의 엔딩은 참으로 묘했다.
우스꽝스러운 <아돌프 히틀러>의 역은 영화의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맡았다. <조조>의 상상 속 인물이지만, 외톨이인 <조조> 옆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었다.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감독이 직접 <히틀러>를 연기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조조>를 옆에서 붙돋아주며 <조조>를 위하는 척하지만, 탐욕스럽고 본인밖에는 모르는 <히틀러>를 아주 천연덕스럽게 표현했다.
제일 애정이 갔던 <조조>의 친구 <요키>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똥똥(통통과 뚱뚱의 사이를 표현)한 몸에 볼을 와구와구 깨물어 보고 싶었던, 주인공 <조조>만큼이나 귀여운 아이였다.
이 스틸컷이야말로 2시간 남짓의 영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한 컷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홀로코스트 영화>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였다. 이 영화를 본 지 10년도 더 되었지만, 충격적인 엔딩으로 지금까지 뇌리에 박혀있는 영화이다. 같은 주제의 영화이다 보니 <조조 래빗>을 보고 나니 자연히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떠올랐다. 비극적이고 처참한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는 달리 <조조 래빗>의 울림은 훨씬 덜 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그만큼 강렬했고, 가벼움 속에서도 뚫고 나오는 힘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감성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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