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3월 내내 나의 눈물 버튼이자 금요일을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것이 바로 <폭싹 속았수다>였다. 1화를 본 순간, 이 드라마는 내 인생작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장면 하나하나가 버릴 것 없이 소중했고 , 감정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아무 생각 없이 틀었다가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휩쓸렸다. 오랜만에 소리 내어 울었고, 그렇게 목놓아 우는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애순>의 삶이 너무 고달팠고,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1화부터 눈을 뗄 수 없었고, 뗄 수도 없었다.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고 헛된 대사가 하나 없다는 게 소름.
1막: 애순과 광례
특히 1화부터 나의 눈물 버튼은 <애순>과 <광례>의 서사였다. 그 시절에도 <애순>이는 본인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광례>는 욕을 먹어가면서 독하게 해녀 일을 했고, <애순>이가 찾아오면 그렇게 모질게 대하면서도 새끼 챙기는 건 역시 <광례>뿐이었다. 힘든 삶 속에서도, 딸만큼은 다르게 살기를, <광례> 본인처럼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시대는 변할지언정 모든 엄마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우리 엄마를 포함하여 대한민국에 모든 엄마들을 원래도 존경했지만 다시 한번 깊은 존경을 표한다. .
<애순>이가 울면 나도 곧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한 캐릭터를 응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만 가득하길 빌었다. <광례>의 말대로 염씨를 떠났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착한 <애순>이는 그러지 못했다. 그 와중에 <애순>이의 모든 걸 빼앗아가는 현실이 너무 미웠다. 그런 각박한 상황 속에서도 <애순>이는 억척스럽게 살아가면서도 마냥 순응하지 않았다. 꾹 참지 않고, 때로는 부딪히며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대견했고 응원했다.
오죽하면 <관식>이랑 야반도주를 했을까 싶으면서도, 믿었던 <관식이 엄마>의 이중성에 화가 나기도 했다. 배신감, 부들부들. 문학소녀를 꿈꾸던 우리 <애순>이가 시집살이를 하며 아궁이에서 불을 떼고, <관식>이에게 인사할 때는 꼬질이 <애순>이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속상해서.
<광례>는 잠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엄마처럼 챙겨주는 해녀 어멍들의 따뜻한 손길에 나 또한 위로를 씨게 받았다. 참 인생사 알다가도 모르겠고, 사람 때문에 힘들다가도 위로받는 건 또 사람들 덕분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관식>이가 <애순>이만을 생각하고 온 인생이 <애순>이여야만 하고 <애친자>여야만 하고 그건 응당 당연한 일이다. <관식>이라도 무쇠처럼 <애순>이 옆을 지켜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된다는 <애순이> 옆에서 <영부인>이 되겠다는 <관식>이 귀여워 미쳐.
2막 : 살아지더라
역시 <애순>이가 울면 나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동명>이의 죽음은 얼핏 예측이 되기는 했다. 근데 내가 <애순>이였어도 <동명>이와의 마지막이 사무치게 남을 것 같았다. 사탕이 우르르 쏟아졌을 떄 으이구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을 줄이야. 사실 <동명>이의 죽음은 안타깝긴 했지만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금명>, <은명> 그 쪼꼬만 애들이 스스로를 탓하는 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말 그대로 사고(事故)였음에도, 그 작고 여린 마음들이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가슴을 아리게 했다.
<금명>이와 <애순> 그리규 <관식>의 서사도 오열 파티였는데 특히 천안 관광 와서는 딸 잠깐이라도 보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관식>의 모습에 우리 아빠가 생각나면서 또 눈물이 났다. <금명>이처럼 계속 짜증내고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러냐며 매번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탄 <관식>이와 쭈뼛대다가 결국 작디 작은 손을 흔들던 <금명>이,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관식>이에게는 아직도 어린 금명이로 그려지는 장면은 2막의 클라이막스였다.
3막 : 나를 지키는 선택
1막의 강렬함에 비해 3막은 다소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금명>이의 결혼 서사가 중심을 이루면서 기대보다 덜 몰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11화, 12화에 들어서면서 <금명>이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애순>이와 <관식>이가 그를 끝까지 믿고 지지해 주는 모습에서 결국 또 눈물을 쏟았다. <영범>이는 <금명>이를 사랑했지만, <관식>이처럼 모든 걸 뒤로하고 반바퀴를 돌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둘도 없는 효자여서 그 결혼은 <금명>이의 희생을 의미할 뿐이었다. 결혼 전부터 <영범>이의 어머니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낸 <금명>이가, 결혼 후에는 더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겠다고 결심한 <금명>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애순>이와 <관식>이의 집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고, <관식>이와 함께 배를 타는 장면들은 특히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금명>이는 어쩌면 한국의 많은 딸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결국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아파하는 존재. 나 역시 <금명>이를 보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문득 후회의 감정이 스쳤다.
4막 :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신도 참 무심하시지","착한 사람을 빨리 데려간다"는 잔인한 말은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듣기 싫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던 관식이가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면은 드라마라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애순이가 시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인생이 살만해질 만하면 시련이 닥치는 게 우리네 현실 같아 씁쓸했다. 마지막에 어린 애순이와 관식이가 가슴 벅차게 꿈을 나열하는 장면에서는, 참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며
이 글을 쓰면서도 <애순>이를 떠올리면 눈물이 차오른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너무 울어서 결국 지쳐 뭔가를 챙겨 먹었다. 한 번에 보기엔 아까운 작품이라 매주 금요일마다 아껴 보았고, 주말마다 조금씩 꺼내 보았다. 볼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대사와 사연들 덕분에 늘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폭싹 속았수다를 보는 시간만큼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말로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린 <애순>부터 중년·노년의 <애순>, 그리고 <금명>까지, 이 시대 모든 <애순>과 <금명>, 그리고 딸들을 위한 작품이었다. 마지막 화를 보기 아까운 드라마는 <폭싹 속았수다>가 처음일 정도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다시 정주행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이 드라마 덕분에 내 3월은 행복했고, 가슴이 애렸으며, 무엇보다 값진 시간이었다.
-Fin.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서브스턴스 : The Substance (0) | 2025.03.25 |
---|---|
[영화] 미키 17 : Micky 17 (1) | 2025.03.18 |
[영화] 검은 수녀들 : Dark Nuns (2) | 2025.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