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에 관하여
죽음이란? 한 일여 년 전부터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땐 참 삶이 덧없다고도 느껴졌고 내 인생에 대해서도 돌아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삶일까 또 가치있게 사는 삶일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평생 동안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정확한 답을 찾기 어려울 수도 또 아마 평생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Youtube는 정말 많은 콘텐츠가 있지만 요새 하도 나라가 시끄러워 서 정치 관련된 영상들이 자주 보이는데 먼저는 PD 수첩에서 예전에 방영한 김건희 논문 표절 사건과 관련된 회차를 보다 다음 동영상으로 이 "나의 죽음에 대하여" 회차를 우연찮게 보았다.
보면서 또 보고 나서 참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면 마취제를 치사량으로 넣는 행위이며 또 본인이 직접 밸브를 열어 죽음을 맞이한다. 고통이 하나도 없다는 게 아주 흥미로웠고 어떻게 보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도 생각된다. 지금은 나도 사지가 멀쩡하고 두발로 서서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 혹시나 그렇지 못한 상황이 오고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삶의 의미를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만 같다. 결국 하루하루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런 생활을 내 스스로가 견디기가 참 힘들 것 같다.
당연히 존엄사가 악용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일례로 캐나다에서는 존엄사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기도 하고 또 가난에 지친 은퇴자들, 노숙자들에게 쉘터 외에 존엄사라는 선택지를 주면서 가난에 허덕이다 못해 궁지로 몰린 사람들에게 죽음을 택하게 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또 우울증 치료를 위해 찾아간 정신과 의사에게서 존엄사를 권유받게 된 환자의 이야기가 밝혀지며 캐나다 안에서도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살려고 찾아간 곳에서부터 죽음을 권유받은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그렇기에 스위스에서는 존엄사 기관에서도 정신적인 질환이 없어야만 그리고 또 존엄사를 오랫동안 생각해왔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로 있기도 하다.
예전에 글을 보았는데 삶의 의미를 찾다 보면 결국 죽음이라는 결론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났고 또 언젠가는 죽는 생물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죽음에 이르기 전 내 인생을 어떻게 잘 꾸려나가야 하는지가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왜? 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행복하게 그리고 더 즐겁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그리고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죽음에 관하여"를 보고 나니 또 연관 영상으로 KBS 스페셜 "죽음이 삶에 답하다"도 보았는데 여기에서는 웰다잉이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해졌다.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무 보잘것없는 일상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고 또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얼마나 복에 겨웠던 일인지도 깨달았다. 내가 건강하게 하루하루 행복함을 느끼는 것도 크나큰 복이었고 또 내일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보장되어 있지 않은데 난 너무 당연하게 내일을 기약했고 그랬던 내가 참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저 멀리 우리의 인생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천천히 준비하고 모두가 외면했던 죽음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왜 계속해야 하고 또 다가올 때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고 또 그렇기에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길,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Fin.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2) | 2024.12.24 |
---|---|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3) | 2024.12.17 |
[영화] Moana 2 : 모아나 2 (2) | 2024.12.10 |
댓글